독서모임 조변한시간

존재와 수단: 왜 우리는 돈버는 기계가 될 때 무너지는가

divorceandlove 2025. 8. 21. 08:32

 

이혼 상담과 일상의 대화 속에서 반복되는 절규, “나는 돈버는 기계가 되었다.” 사람이 도구로 전락할 때 왜 무너지는지, 존재로 존중받는 경험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연대로 이어지는지 성찰합니다.

 

 

상담실에서 들은 한마디: “저는 돈버는 기계입니다.”

 

상담실에 앉아 있던 한 남성 의뢰자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렇게 말했습니다.
말끝마다 한숨이 섞였고, 두 손은 무릎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였습니다.
가정을 꾸려온 세월이 이제는 은행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만 환원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날 상담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 공교롭게 택시 기사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집에서는 생활비만 요구하고, 밖에서는 손님 태워다 주는 기계로만 보죠.”
차창 너머 평범한 풍경과 달리, 그의 말은 제 안에 오래 남았습니다.
상담실의 절규와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인간이 견디지 못하는 이유

 

왜 사람은 이렇게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견디지 못하는 걸까요.
기계는 고장 나면 교체하면 되지만,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존재가 조건부로만 인정될 때,
“돈을 벌어야 의미가 있다.”
“생활비를 가져와야 존재할 수 있다.”
그 순간 사람은 스스로의 가치를 잃습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은 교환으로 바뀌고, 생활비가 곧 역할이 되고, 역할이 곧 존재가 되는 순간,
인간은 기능으로 환원되고, 존재의 뿌리가 잘려나갑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더 이상 나로서 필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버텨낼 수 없게 됩니다.


정말로 우리는 서로를 존재로만 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정말로 우리는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존재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족도, 배우자도, 자녀도 우리를 힘들게 할 때가 있고, 때로는 절연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그 존재를 온전히 감당할 힘이 없다는 고백일 뿐입니다.

 

그래서 존재를 존중한다는 것은
반드시 곁에 두고 끝까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거리를 설계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존재로서의 예쁨, 그리고 연대의 의미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서로를 존재로 대우하고 싶어 하고, 또 그렇게 대우받고 싶어할까요.

 

그건 인간이 단순히 쓸모로만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쓸모는 사라지지만, 존엄은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
그 믿음 위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너는 그냥 있어서 좋아”라는 말이 필요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존재로서의 인정이 있어야 자아가 자라고, 역할을 감당할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 존재로서의 예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지탱하는 뿌리입니다.

 

그러나 이 경험은 혼자 만들 수 없습니다.

 

존재로서 사랑받는 경험은 반드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합니다.
그리고 그 의존이 불편함을 넘어 아름다움이 되는 순간, 그것을 연대라 부를 수 있겠지요.


글을 마치며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기대어, 존재로서의 예쁨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 경험이 있어야 다시 기능을 해내고, 각자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존재를 지켜내는 이 애씀 자체가 곧 연대일 것입니다.

 

덧붙여.... 

 

이런 연대가 있는 곳이 독서모임 "조변한시간"입니다. 

내 진주알들 모두 사랑합니다. 

 

[이글의 원문, 메모]
존재로 대한 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존재로 대한다는 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이상임. 
"현실과의 괴리"
호혜적 개념 (나도 누군가로 부터 존재로 대함을 받고 싶고, 존재로 예쁨 받고 싶음, 그래서 나도 누군가를 존재로 예뻐함) 
현실에서는 서로를 모두 도구로 여겨서 서로 버리고 버림받고 함. 
그렇다면 나는 어디까지 누군가를 존재로 대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누군가로 부터 존재로 대함을 받을 수 있을까. 
관계성의 본질, 누가, 누굴, 어디까지, 얼마나 존재로 예뻐할 수 있을까 
존재로 대한다는 이상은, 그에 대한 위로이고, 그는 그 위로를 바탕으로 자신의 몫을, 기능을, 역할을 잘 해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결국 존재로 예쁨 받음을 통해서 어쩌면 도구의 표상일 수 있는 해당 기능을 잘 해내는 상태, 즉 존재의 이유를 드러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